혹여나 SF공상영화를 극장에서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. 나도 인터스텔라나 인셉션, 마션 등을 본 것을 기억하는 데 그 중에서 인상 깊게 봤던 장면만 어렴풋이 기억할 때가 있다. 인터스텔라 경우에 블랙홀로 주인공이 들어가는 장면, 완벽히 기억에서 꺼낼 수 없지만 희미하게 알 것만 같이 들리는 BGM과 함께 기억상자에서 꺼내고자 하거나 스치듯이 지나가면 소름돋을 때가 있다. 이 책의 표현력이 그와 버금가는 기억을 추가해줬다. 이녕이 약 때문에 사경을 해맬 때 곤이 다급해 하던 장면에서의 주변의 상황, 냄새, 분위기를 몸으로 기억한다. 독후감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며 '아가미'란 단어를 뇌 속에서 꺼내려고 할 때마다 그 장면이 맴돈다. 누구보다 어린 나이에 마음을 가져야 할 곤이 성숙한 행동을 보일 때마다 아련하게 느껴지기만 한다. 그 기억이 내 마음을 울리며 미약하게 나마 그리워하는 것 같다. 항상 그가 편했으면 했기에 상식적으로 아가미가 달려있으면 밖이 불편할 텐데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. 또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. 오늘도 나는 그는 잘 지내고 있을까 마음속으로 편지를 적어 비행기로 접은 다음에 그에게 날려보낸다.
곤, 보통 사람은 말이지요, 자신에게 결여된 부분을 남이 갖고 있으면 그걸 꼭 빼앗고 싶을 만큼 부럽거나 절실하지 않아도 공연히 질투를 느낄 수 있어요. 그러면서도 그게 자신에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도리어 좋아하기도 하는 모순을 보여요. 양쪽의 세계에 걸쳐진 감정은 서로 교환되거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, 기껏해야 적정 수준에서의 은폐가 가능할 뿐이에요.
강하의 상태는 그랬는데, 그때 그 사람이 나타나 일상의 침묵과 균형을 깨어버렸고 계획이 틀어져버렸죠. 당신도 너무나 잘 아는 바로 그 사람 말이에요. 그 사람으로 인해 당신이 지금도 이렇게 자기를 숨겨가며 살고 있는 거잖아요.
곤, 당신 이름 있잖아요. 그거 할아버지 아니고 강하가 지어준 거래요. 그렇게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운 단 한 글자뿐인 이름을, 막상 자기가 붙여놓고 부르지도 못했대요.
그 무렵 강하는 『장자』를 어린이용 다이제스트 판으로 엮은 학급문고 도서를 읽고 있었대요. 장자의 첫 장에는 이런 얘기가 있거든요.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, 그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곤(鯤)이라고 한다……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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